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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WBC 탈락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

기사입력 2013.03.08 17:23 / 기사수정 2013.03.08 18:35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논어(論語)>는 동양 최고의 고전이다. 공자(孔子: B.C. 551∼479)와 그의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기록·편집한 이 책은 2천 년이 넘도록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놀라운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논어해설서인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를 짓고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바가 있습니다. 흡사 어렸을 적에 새벽에 밤나무 동산에 가서 홀연히 붉은 밤알이 난만히 땅에 흩어져 있는 것을 만나 그것을 다 줍기가 벅찼던 것과 같으니 이를 장차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李秉喆: 1910∼1987)의 회고록 <호암자전(湖巖自傳)>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가장 감명 받은 책 혹은 좌우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논어>다.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 <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한다.”

조선(朝鮮)에선 <논어> 자체가 관직으로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험과목이었다. 논어 외우기는 사대부의 필수교양이었다. 그런 시대가 400년 이상 흘렀는데도, 논어에 관한 더 이상의 논의나 해석이 가능할 법하지 않은데도, 이 조선후기 최고의 천재는 논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희열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일구어낸 영웅적 경영자에게도 <논어>는 일생을 관통하는 감화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 <논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해도가 누적되어 해석의 깊이를 더하는 문헌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모든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해석과 접근을 통해 매번 새롭게 재탄생해야 하는 인류문명사의 보고(寶庫)인 것은 아닐는지. 수많은 현대의 학자들이 경영학적 관점에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기타 여러 측면에서 <논어>를 해석하고 다양한 말과 숱한 글을 남겼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의 중요제도 가운데 하나인 스포츠의 관점에서 <논어>를 해석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도 한 번 쯤은 시도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논어>를 통해 스포츠를 조망해 보는 일도 역시. 이 소박한 희망이 ‘논어와 스포츠’라는 칼럼을 시작하는 이유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2013 WBC 1회전에서 탈락했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 그 사이에 있었던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비교하면 아쉬운 결과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경기일정, 시차, 기후, 홈팀 텃세,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국팀의 부진원인을 진단하는 다양한 분석들이 나온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잘못된 판정에서 비롯한 직접적인 불이익을 제외한다면, 스포츠 선수들은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 소생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다 핑계다. 홈 팀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선수들도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터이다. 비교의 대상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다른 종목 태극전사들에 비하면, 야구 대표팀의 훈련 및 숙식환경은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최상급이었다. 그런데 1회전 탈락이라니.

잠시 안타까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논어 선진(先進)편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子張이 問善人之道한대 子曰 不踐迹이나 亦不入於室이니라
자장이 문선인지도한대 자왈 불천적이나 역불입어실이니라.

(해석) 자장이 선인의 도에 대해 물으니,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의) 발자취를 밟아 따르지 않고는 또한 (성인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장은 공자의 제자다. 공자와의 나이 차이가 48세였다고 하니, 이 문답은 20대의 혈기왕성한 제자와 70대의 원숙한 스승사이에 오간 대화였으리라. 자장은 빼어난 능력을 지녔으되 나서기를 좋아하고 출세에 관심이 많은 제자였다. 공자의 다른 제자가 ‘자장은 어려운 일을 하는데는 유능하나 아직 어질지는 못하다’라고 한 인물평이 논어의 다른 편에 전한다. 선인(善人)은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성인(聖人)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사람’으로 새긴다. 스포츠를 논하는 이 칼럼에서는 ‘선인’을 ‘국제대회 우승’ 혹은 ‘세계적인 선수’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그렇다면 이 문장을 ‘재능이 있는, 그러나 아직 완성품이 아닌 선수가 어떻게 하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여쭈었다’로 의역하고 공자님의 대답을 해석해보자.



천(踐)은 밟다, 닫다, 좇다는 의미다. 적(迹)은 흔적, 발자취를 말한다. 실(室)은 실내, 혹은 방 안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성인 혹은 성인에 가까운 사람들만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말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가. 공자님은, 앞서간 훌륭한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 차근차근 자기발전을 도모하라고 답한다. 2013 WBC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은 ‘지난 대회 준우승이었으니 이번에도 최소한 4강은 간다’, ‘우리와 진검승부를 벌일만한 상대는 일본, 쿠바, 미국 정도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쿠바가 한 조에 편성된 것은 한국까지 포함한 세 팀 중 최소한 한 팀은 결승리그에 오르지 못하게 막으려는 미국의 음모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2차리그 진출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만에 하나, 선수들마저 이렇게 생각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음가짐이 최선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공자님은, 자장과의 문답을 통해 어떤 경우든 스스로의 소질과 재능을 과신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단계와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과정을 건너 뛴 채, ‘우승’이라는 목표에 연연하여 단숨에 그러한 목표에 도달해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는 이승엽 선수는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꾸준한 연습만이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자기고백이다.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천적(踐迹), 즉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다. 꾸준히 애쓰되,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맞는 바를 찾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도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국제대회 우승을 하기 위한 중요한 포인트다. 성공이나 우승은 정당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법이다.

사족(蛇足) - 2013 WBC 1회전 탈락이 아쉬운 까닭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가 운동경기를 넘어 생활문화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다소 줄어든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세 번의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2012년 시즌엔 누적관중 수도 한 시즌 최다기록인 715만명에 이르렀다. 금년 시즌에는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페넌트레이스에 참가하고, 제10구단 KT도 창단승인을 받았다. 바야흐로 야구중흥과 1000만관중 시대의 도래도 꿈만은 아니다.

1983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을 한국 야구의 정점으로 기억하는 팬들도 있다. 김재박(金在博)의 개구리점프 번트, 한 대화(韓大化)의 역전 스리런 홈런이 짜릿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회는 프로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은 대회였다. 우리의 결승리그 마지막 상대였던 일본도 프로가 아닌 사회인 야구 대표팀이었다. 반면에 WBC와 올림픽은 명실상부한 각국 정예멤버들끼리의 각축장이었다. 승부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최상급의 대회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는 뜻이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팀 매각을 추진했을 때, 원매자가 없었다. 팀이 그대로 공중분해되고, 다시 7구단 체제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야구계를 짓눌렀다. 그 때는 왜 대기업들이 야구단 인수를 거절했을까. 프로야구의 인기가 그만큼 미약했기 때문이다. 세 번의 국제대회를 거치며 우리 팬들은 한국야구에 미안한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한참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대표팀 수준에서는 세계적인 야구를 하고 있었구나.

참가를 반대하는 소속구단을 설득하고, 사소한 부상을 이겨내며 헬멧이 부서져 나가도록 허슬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에게 팬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야구팬들의 자존심이었다. 야구 인기폭발의 기폭제였다.

이 번 대회에선 분위기가 달랐다. 팬들의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구단들은 선수 차출을 놓고 대표단과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가 좋았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기대이하의 졸전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팬들에게 비친 이 미묘한 이기주의가 혹시나 이번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는지.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 = WBC 대표팀 ⓒ 엑스포츠뉴스DB ]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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