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열 살 때 TV로 박세리 선배님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어린 나이에 무엇이 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습을 본 것이 골프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당찼다. 골프는 물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욕심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프로 데뷔 2년 만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상에 등극한 양제윤(20, LIG손해보험)은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KLPGA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다승자가 좀처럼 나오기 힘들어지고 있다. 정상권에 있는 골퍼들도 시즌 1승이 기본적인 목표가 됐다. 지난해 상금순위 44위에 불과했던 양제윤은 올 시즌 급격히 비상했다. 4억이 넘는 상금을 벌어들이며 상금 순위 4위에 올랐고 투어 2승을 거뒀다.
또한 9개의 투어에서 10위권에 진입하는 꾸준함을 보였다. 이러한 결실은 대상포인트 1위로 이어졌고 KLPGA 시상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시즌이 끝난 뒤 좀처럼 쉴 틈도 없다. 하루 종일 집에서 쉬고 싶지만 KLPGA 퀸에 등극한 그에 대한 관심은 매우 뜨겁다.
"쉴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즌이 끝나면 하루종일 집에 있고 싶었어요.(웃음) 하지만 하루에 밖에 나가야할 일이 꼭 하나 이상은 생기더라고요.(웃음) 올해는 집에 하루 종일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극적인 최종전. 마지막에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프시즌에도 바쁜 나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시즌을 알차게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관심을 보내주는 이들이 매우 고맙다. 올 시즌 KLPGA의 히로인은 단연 양제윤이었다. 시즌 최종전인 ADT캡스 챔피언십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던 김자영(21, 넵스)의 우승이 유력해보였다. 김하늘(24, KT)과 상금왕 경쟁을 펼쳤던 김자영은 시즌 4승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반전됐다. 최종 라운드에서 무서운 기세를 보인 양제윤은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대상포인트 1위에 올랐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제 목표는 컷 탈락 없이 시즌을 마무리 짓는 거였어요. 또한 첫 우승을 꼭 하자는 목표도 있었죠. 대상포인트 1위는 처음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시즌 최종전인 ADT캡스챔피언십에 시선이 집중됐다. 이 대회의 결과에 따라 대상포인트 1위와 상금왕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지막라운드에서 기지를 발휘한 양제윤은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됐다.
"마지막 대회에서 경쟁자들이 많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다른 상대를 의식할 때 저에게 득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김)자영 언니와 함께 경기를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 플레이에만 집중했습니다."
어려웠던 가정 형편, 골프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다.
정상급 골퍼를 완성하려면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하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종목 중 하나인 골프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양제윤도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골프를 시작한 뒤 항상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골프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됐기 때문이죠. 만약 올해마저 안 풀렸다면 골프를 계속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하지만 올해만큼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내내 표정이 밝았다. 필드에서도 어두운 표정을 좀처럼 짓지 않던 그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경기를 할 때는 긴장을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잘 숨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살이던 무렵. TV를 통해 본 박세리(35, KDB금융)가 가슴 속에 녹아들었다. "천성적으로 골프에 끌렸던 것 같다"고 말한 그는 박세리의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한국 여자골프에 새로운 획을 그은 박세리는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양제윤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올해 열린 LPGA 하나외환은행 투어에서 박세리 선배님의 경기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플레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이렇게 가까이서 배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 때는 박세리 선배님의 경기를 보고 배우는 것에 바빴어요."
양제윤이 가장 존경하는 골퍼는 박세리와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두 명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이다. 그는 "거장들보다 더 잘하겠다는 목표보다 그 분들을 따라가면서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애늙은이', 이상형은 유재석
밤낮으로 골프만 생각하는 그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조용한 카페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이 전부다. 20세의 여성이라면 자연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들은 거리가 멀다고 털어놓았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잘 하지 않고 TV도 잘 안보는 편이에요. 제 또래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둔감해서 그런지 친구들은 저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놀려요.(웃음)"
즐기는 것은 많지 않지만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패션과 미술에 관심이 많고 영어회화 공부는 반드시 할 생각이다. 최종목표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진출하려면 회화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저도 최종목표는 LPGA 진출입니다. 가장 큰 무대에 나가서 잘치고 싶은 꿈이 있어요. 골프에 대해 욕심이 많지만 제 인생 속에 골프가 있다고 생각해요. 골프 때문에 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비시즌 기간 동안 가장 재미있었던 일 중 하나는 배구 경기 관람이었다. 같은 소속사 팀을 응원하기 위해 배구장을 방문했던 그는 처음으로 배구를 직접 관람했다.
"배구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배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종목인지를 이번에 알게 됐어요. 앞으로 시간이 나면 배구장을 자주 찾고 싶습니다. 이상형은 유재석 씨인데 자상하면서도 예의바른 남자가 좋아요. 또한 웃을 때 정이 가는 남자가 끌려요.(웃음)"
다가오는 2013년의 목표는 분명했다. 대상포인트 2연패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대상포인트 2연패가 새해의 목표입니다. 올해 9개의 투어에서 10위권에 진입했는데 내년에는 10개 투어 이상 10위권에 들고 싶어요. 그리고 최종적인 꿈은 역시 미국 진출이겠죠.(웃음)"
[사진 = 양제윤 (C)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