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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설(海東傳說)7 (1) 기재출현

기사입력 2007.02.15 05:51 / 기사수정 2007.02.15 05:51

김종수 기자

글: 김종수/그림: 이영화 화백

포항현,

"킥킥킥…정말이에요?"

"그 인간들이 미쳤군요. 감히 우리에게…"

연무관의 한쪽에 들어차 있는 십 여명의 소년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조소(嘲笑)가 가득히 번져있었다.

"하도 농구가 안되다 보니 살짝 맛이 간 것 아닐까요?"

"흐흐흣…그러게 말이다. 한번만 붙어달라고 사정사정하기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은 했지만,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소년들의 정면에서 역시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있는 사내, 이엽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인으로 포항현 청소년대표 농구교관이다.

"자자…준비들 해라. 곧 놈들이 도착할 시간이다."

이엽이 박수를 치자 소년들은 일사분란하게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멸치떼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감히!'

자신이 가르치고있는 연무관에 시합을 요청해온 것만으로도 이엽은 심히 격앙되어있는 심정이었다. 자부심, 나름대로는 상대와 급이 다르다는 일종의 자부심이 크게 작용한 탓이리라.
며칠 전 이엽은 인천현 청소년대표 측으로부터 연습시합 요청을 받았다. 시합요청을 듣기가 무섭게 이엽은 자신의 귀부터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이끄는 포항현대표는 작년 전국대회에서 4강에 오른 막강한 전력의 팀이었고, 그에 반해 인천현대표는 매번 예선 탈락하는 약체 중에 약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더욱더 이엽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인천현의 새로온 교관이었다.
박덕인(朴德仁).
과거 대전현에서 같이 농구를 배웠던 동기생이었다. 하지만 같은 격발수에서 뛰고있던 둘은 본의 아니게 항상 경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이엽은 박덕인에 밀려 대전대표에서 탈락하고만 아픈 경험이 있었다.

'얼마든지 와라. 선수시절과 지금은 입장이 서로 다를 테니까…'

이엽의 마음은 박덕인에 대한 복수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반갑다. 좋은 승부 해 보자."

"좋은 승부? 그래, 좋지. 좋은 승부."

악수를 청해오는 박덕인의 손을 마주잡으며 이엽이 거만스럽게 턱을 끄덕거렸다.

'좋은 승부는 무슨 얼어죽을 좋은 승부…?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주마.'

이런 이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덕인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엽은 인천현 선수들을 힐끗 훑어보았다. 전국대회 예선 탈락할 때 보았던 선수들, 거의 그대로였다.

'응? 저놈은 뭐지?'

낯선 외모의 소년이 이엽의 눈에 들어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농구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그마한 체격, 팔다리는 그런 대로 균형이 잡혀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그나마도 잔 근육인지라 상당히 왜소해 보이는 느낌을 주고있었다.

'새로 온 전달수인가보군?'

달리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저렇게 작은 체구로 다른 역할을 하기는 힘들 테니까 말이었다. 사실 소년의 체격은 전달수를 하기에도 작은 편이었다.

 


"절대 봐주지 마라. 확실히 짓밟아 버리도록."

포항현대표의 주전전달수이자 주장인 양진웅을 돌아보며 이엽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염려 마십시오. 저놈들에게 오늘하루를 완전히 악몽(惡夢)으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약삭빠른 양진웅인지라 자신들의 교관인 이엽이 왜 이러는지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양진웅의 태도에 이엽은 흡족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이엽의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이엽의 얼굴 색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도…도대체…'

사십대 십육! 인천현대표가 사십 점이었고, 포항현대표는 십육점이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점수 차는 더 벌어지고 있었다.

"저…저 녀석은 누구야?"

박덕인에게 슬며시 다가간 이엽이 경직된 음성으로 물었다.

"아…상우말인가? 이상우라고 두달 전에 우리 쪽에 합류한 전달수일세."

빙긋이 웃는 얼굴로 박덕인이 대답했다.

"두…두달 전…?"

"응, 사실 나도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저렇게까지 잘할 줄은 미처 몰랐어."

포항현이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인천현의 선수들은 예선탈락 할 때의 구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우라는 단 한 소년, 그 소년으로 인해서 경기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송곳같이 공을 전달해줌에 인천현선수들은 쉽게쉽게 득점을 올리고 있었다.

딱 입맛에 맞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달리는 선수 앞 선에 공을 전달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촘촘한 수비벽사이에서도 정확하게 찔러주는 수법은 열 다섯 살 가량의 소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정신차리지 못해! 앞 선에서 막아줘야 할 것 아니야?"

답답해진 이엽이 주장인 양진웅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헉헉…"

허나 양진웅의 귓가에는 지금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는 이상우를 막느라 숨이 턱까지 차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막아서는 이상우를 쳐다보는 양진웅의 눈가에는 경악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타탁!
이상우는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느새 빛살같이 뻗어나간 손은 주춤하던 양진웅의 공을 가로채버렸다.

'아…안돼.'

반칙이라도 해서 끊어보고자 양진웅은 필사적으로 이상우의 허리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익.
그러나 어느새 이상우는 앞으로 쏜살같이 치고 나갔고, 그 바람에 양진웅은 맥없이 바닥에 나뒹굴 뿐이었다.
삐익…
잠시 후 양진웅이 몸을 일으켰을 때는 전반전종료를 알리는 뿔피리소리만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뭐 하는 것이야? 어디다 넋을 놓고 있기에 이따위야!"

선수들을 불러 세운 이엽은 노발대발하면서 주먹으로 탁자를 마구 후려쳤다.

"분명히 말했지? 봐주지 말고, 묵사발을 만들어버리라고!"

"그…그것이…저희도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쪽 인천현의 전달수 녀석,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으로 양진웅이 대답했다.

"웃기지마! 그래봤자 저쪽은 그놈혼자야. 그놈하나만 막으면 되는 것을 왜 이렇게 답답하게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

"두 명, 세 명이서 겹겹이 에워 쌓아버려! 안되면 육탄돌격을 하고! 그놈도 사람인 이상 집중수비를 당하면 지쳐서 움직임이 둔화될 거야. 알았나?"

(계속)

※ 본 작품은 프로농구잡지 월간 '점프볼'을 통해 연재된 소설입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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