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8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강제규 감독은 1996년 '은행나무 침대'를 시작으로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까지 한국 영화계의 굵직한 중요 지점들을 상징하는 영화들을 연출하며 관객들과 함께 해왔다.
2015년 개봉한 '장수상회' 이후 8년 만의 신작인 '1947 보스톤'으로 돌아온 강제규 감독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새 작품을 내놓기까지 겪었던 마음의 변화를 소탈하게 털어놓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지난 2019년 9월 촬영을 시작해 2020년 1월 크랭크업 한 '1947 보스톤'은 코로나19 여파와 2020년 11월 주연 배성우의 음주운전 논란으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촬영을 마친 후 3년 반이 지난 올해 9월 개봉을 맞이하게 됐다.
강제규 감독은 "'장수상회'가 개봉하고, 중국과 함께 하려던 프로젝트를 얘기하다 보니 2~3년이 지나가더라. 2018년이 돼서 '1947 보스톤' 시나리오를 받고 그 때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으로는 작년 설 때 개봉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쉬리'도 그렇고,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 때 개봉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흥행도 잘 돼서) 제가 설날과 잘 맞나 싶기도 했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어 "특히 '1947 보스톤'은 두루두루 가족들과 보기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있어서, 명절 때 개봉하는 것이 그래도 장점이 되겠다 싶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연기가 되고, 이렇게까지 밀릴 것이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저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지쳐서 어느 순간에는 긴장도 되지 않고, '개봉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고백했다.
후반작업에만 2년 넘게 공을 들였던 시간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으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려 했던 마음도 덧붙였다.
강제규 감독은 "제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후반작업을 2년 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축복이지 않나. 저는 제가 만든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안 좋은 것만 계속 보여서, 계속 '저 때 왜 저랬을까'라는 생각만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 의견들을 소중하게 하나하나 다 받았다. 그래서 결과와 상관 없이, 적어도 그런 쪽에서의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다"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1990년대 파격적인 내용의 정치 스릴러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한국형 느와르의 새 장을 연 '게임의 법칙'의 시나리오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던 강제규 감독은 연출 데뷔작인 '은행나무 침대'에 이어 첩보 액션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쉬리', 한국 전쟁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역대 두 번째 천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 유명 대표작들을 연출한 한국 대표 감독이다.
강제규 감독은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 성공 이후 큰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제가 스스로 그런 부담을 너무 많이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작품들의 흥행 이후에도) 더 많은 작품을 못했던 것 같다"고 곱씹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영화의 선배로서, 조금 더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시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던 이야기도 꺼냈다.
강제규 감독은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제가 대한민국 감독 중 처음으로 CAA(Creative Artists Agency, 미국 최대 규모 엔터테인먼트 및 스포츠 에이전시)에 소속이 됐는데, 그 때 에이전트가 제게 작품 제안을 줬던 것이 40편 정도 됐다. 그 때 준비하고 있던 SF 영화에 대한 고집으로 그 제안들을 다 거절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분명히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가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제가 과욕을 가진 지점, 판단 미스를 한 지점이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렇게 '장수상회' 이후 조금 추스르고 중국과 준비했던 큰 제작비가 투입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한한령이 불어닥치고 하면서 또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OTT 영향력의 확대 등 변해가는 환경들을 몸소 체감하고 있는 시선도 덧붙였다.
강제규 감독은 "저는 한국 영화가 어려운 시기에 영화를 시작한 사람 아닌가. 한국 영화 점유율 10% 시대를 경험하면서 영화를 시작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 이후에 굉장히 또 많은 영화인들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큰 변화와 성장을 이뤘다. 최근의 우리 후배들을 보면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 제 자식이 잘 된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엷게 미소 지었다.
이어 "코로나19가 오고 나서 환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하는데, 한국영화에도 늘 위기는 있어왔다. 정말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아야되겠다 싶다. 관객 분들이 OTT를 이용하시지만, 그렇다고 극장에 안 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문턱이 조금 높아진 것인데, 그런 문턱을 극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지금 영화인들의 숙제이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각 영화 포스터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