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백전노장 루이스 판 할이 자신의 혜안을 8년 만에 복귀한 월드컵 무대에서 증명했다.
A매치에 한 번도 나서지 않은 신예 골키퍼를 월드컵 1차전부터 떡하니 올려놔 승리의 주춧돌로 삼았다.
판 할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은 22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A조 세네갈과의 첫 경기에서 코디 각포와 데이비 클라센의 연속골을 묶어 2-0 완승을 거뒀다. 네덜란드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2014 브라질 월드컵 때 3위를 차지했으나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땐 졸전 끝에 유럽예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판 할 감독에게 다시 대표팀 사령탑을 내주고나서야 네덜란드는 정상 궤도를 찾아 월드컵에 복귀했다. 첫 경기에서 아프리카 난적을 상대로 쾌승했다.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은 후반 39분 헤딩골로 0-0 균형을 깬 23세 미드필더 각포를 들 수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뛰었던 네덜란드 명문 PSV 에인트호번 공격수인 각포는 이날 골 외에도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카타르 월드컵 스타 후보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하지만 각포 못지 않게 승리에 공헌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장 203cm를 자랑하는 골키퍼 안드리스 노페르트다.
이번 대회에서 세르비아 골키퍼 바니아 밀린코치비-사비치(202cm)와 함께 '유이한' 2m 선수로 등록된 노페르트는 사실 등번호도 23번일 만큼 주전으로 꼽히지 않는 문지기였다. 그러나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주전이었던 야스퍼 실러선이 기량 난조와 함께 엔트리에서 전격 제외되고, 또 다른 골키퍼 팀 크룰이 판 할 감독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인 듯 대표팀 은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네덜란드 골키퍼는 그야말로 안갯 속 경쟁 형국을 그리고 말았다.
그래도 A매치 경험이 있는 유스틴 빌로우나 렘코 파스베이르에게 골키퍼 장갑이 돌아가지 않을까 관측됐으나 판 할 감독은 카타르에 오자마자 노페르트의 선발 가능성을 암시하더니 세네갈전에 그대로 투입했다.
노페르트는 단순히 A매치 경험이 없는 게 아니라 지난 시즌 자국리그 고어헤드이글스로 팀을 옮긴 뒤부터 조금씩 출전할 만큼 프로 무대에서도 계속 후보였다. 이번 시즌 고향팀 헤이렌베인으로 이적한 뒤 14경기에 나서며 주전으로 이제 막 올라섰다.
노페르트는 판 할의 결단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듯 전반전 안정된 플레이에 이어 후반엔 상대 슛을 연달아 쳐내 네덜란드 승리에 공헌했다.
후반 20분 세네갈 공격수 불라예 디아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날린 회심의 오른발 슛을 반사적으로 쳐낸 그는 8분 뒤 이드리사 게예가 골문 정면으로 때린 슛도 막아내며 0-0 균형을 지켜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두 골을 퍼부어 이겼다.
A매치 경험이 없는 선수를, 그것도 골키퍼 포지션의 선수를 월드컵 1차전에 내세울 지도자는 많지 않다. 판 할 감독 역시 26인 엔트리 발표 뒤 실러선 빠트린 것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뚝심있게 밀고 나간 판 할의 노페르트 기용은 자신의 용병술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올해 71살인 판 할 감독은 2년 6개월 전부터 전립선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4월 공개돼 네덜란드 축구팬들의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런 위로에 승리로 보답한 셈이 됐다.
판 할은 세네갈전 뒤 자신이 1990년 아약스 지휘봉을 잡을 때 19살 신예 에드빈 판더사르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오세르전에서 과감히 기용, 훗날 그를 세계적인 수문장으로 키운 것에 대해 얘기했다.
노페르트에게서도 판더사르와 같은 향기를 느꼈다는 뜻이다.
2002년 대회에선 유럽예선 탈락, 2014년 대회에선 3위로 극과 극을 오갔던 판 할의 3번째 월드컵 도전이 골키퍼 기용을 통해 막을 올렸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