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2-0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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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민 감독의 톡톡] 민병훈 감독의 역작 - '벌이 날다'

기사입력 2011.04.27 18:31 / 기사수정 2011.05.16 22:37

황하민 기자

[엑스포츠뉴스 = 황하민 칼럼니스트] 어느 시골 마을, 어린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주인공과, 담을 사이에 둔 한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자는 자신의 담 곁에 화장실을 만들고는 심한 악취를 풍기며 볼일을 보며, 주인공의 아내를 훔쳐봅니다. 주인공은 부자를 찾아가 정중히 화장실을 옮겨줄 것을 부탁 하지만 되래 면박을 당하고 돌아옵니다. 억울한 마음에 검사에게까지 찾아가보지만 그도 한통속입니다.

참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의 소중한 양들을 팔아 검사의 옆집을 삽니다. 그리고는 창문 바로 밑에 마을의 공동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화가 난 검사는 주인공에게 갖은 협박을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고집스럽게 땅을 팝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이 모함에 빠지게 되자 결국 화장실 만드는 일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기적일까요? 200년 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우물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판 구덩이가 우물로 바뀐 것입니다.
 


잔잔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우화처럼 작고 따스한 이야기 '벌이 날다'는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 타지키스탄에서 촬영된 영화입니다. 타지키스탄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해체되면서 1991년에 독립한 작은 이슬람 국가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 연출한 감독은 당시 20대 후반의 민병훈이라는 한국인 이었고 함께 러시아국립영화학교(VGIK)를 다니던 친구 잠셋 우스마노프와 공동 연출로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탄생시키기까지 여정은 무척 험난했다고 합니다. 타지키스탄은 오랜 내전 중이었고 입국 절차도 쉽지 않은 터라 민감독은 학생이 아닌 선교사 신분으로 어렵게 비자를 받아 타지키스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도 두샨베에서 이틀간 차를 타고 들어간 아슈트란 곳에서 11개월에 걸쳐 촬영을 했는데, 그곳은 내전으로 끼니나 물, 전기도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험한 곳이었습니다.

촬영 후에도 험난한 여정은 끝나지 않아, 폭격으로 현상소가 무너져 필름 원본을 모두 잃을 뻔한 아찔한 사고도 이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벌이 날다'는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단 두 차례 상영에 고작 40여명이라는 관객들의 냉담한 외면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그 해 심사위원장이었던 세계적 거장인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로부터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최고의 작품이었다. 작은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렸고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담은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게 됩니다. 영화는 마흐말바프 감독의 도움으로 1998년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영화제에 초대돼 대상과 비평가,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같은 해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에서 은상을, 1999년 독일 코트부스 국제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과 러시아 아나파 국제영화제의 감독상을 받는 등, 험난했던 여정의 값진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될 뻔 했던 곳에서 생명을 살리는 귀한 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영화 속에서 발견된 우물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200년 동안 우물을 찾지 못했던 아슈트 마을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 판 곳이 우물을 낸 것입니다. 우물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척박한 아슈트에 생명의 기운을 싹 틔웠습니다.  200년 만에 발견된 아슈트 마을 우물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민병훈, 잠셋 우스마노프 우물'

우리들도 이 세상 속에 숨겨진 우물과 같진 않을까요? 그냥 고여 썩은 물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우물......

( 벌이 날다 Bee Fly / 개봉 1999.12.24 / DVD 출시 태원 entertainment / 전체 관람가 )



황하민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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