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인터뷰②에 이어) '옷소매 붉은 끝동'은 덕임(이세영 분)과 이산(이준호)의 로맨스 케미와 섬세한 연출, 아름다운 영상미, 배우들의 열연 등 모든 부분이 시너지를 내면서 웰메이드 드라마로 남았다.
앞서 멜로와 감정선에 집중하겠다는 정지인 PD의 말처럼 젊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적당히 버무리면서도 너무 가볍지만은 않은 로맨스 사극을 보여줬다.
첫 사극 연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정지인 감독은 엑스포츠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원작이 있어도 실존인물이 나오는 만큼 고증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제일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세트 촬영에서 가장 신경 쓰이고 끝까지 고민했던 것들은 계급과 지위에 따른 상하석 구분입니다. 한 번 맞춘 자리 배치가 카메라 앵글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전에 리허설하면서 지킬 수 있는 건 최대한 지키되 원하는 각을 잡기 위해 고증의 허용 범위 내에서 조금씩 변형을 주도록 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두텁떡을 내오는 씬이나 덕임이 사통 혐의를 받게 된 화빈의 처소 씬들 같은 경우가 특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증을 지키기 위해 배우들은 미리 예절교육을 받기도 했단다.
"배우들에게 촬영 전에 예절교육을 다녀오게 해서 따로 공수나 절하는 방법을 일일이 알려주는 수고를 덜 수 있었습니다. 함께 예절교육을 받았던 조연출들이 현장의 예절 선생님으로서 큰 활약을 한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극 연출의 장점이 있는 반면, 현대와 다른 시대적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도 느꼈단다.
"촬영이나 미술, 조명, 심지어 날씨의 변화 등을 현대극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결정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어 연출적인 면에는 자유롭고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니기에 현대인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정서가 참 답답했습니다. 계급이 모든 걸 결정하고 여성이 할 수 있는 게 제약이 많은 시대인 걸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연출해야 되는 게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했지만 마음으로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 여성이자 궁녀 덕임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 과제였다. 왕의 여자보다 자기 삶을 사려는 주체적인 덕임의 모습, 이에 이산의 애정을 거듭 거부하는 덕임, 그러나 결국은 승은을 입는 과정을 개연성있게 그려야 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원작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택하며 덕임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후반부에서 가장 고민됐던 전개 중 하나였습니다. 원작에서는 승은이 왕의 명령 한 마디로 이루어지며, 덕임의 선택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읽을 때는 당연한 것들이 막상 영상화의 과정에서는 망설여졌습니다. 이미 우리의 산과 덕임은 원작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그에 맞춰 승은을 입는 과정도 다르게 가야 될 것 같았습니다.
승은의 순간이 오게 되면, 산이 꼭 덕임에게 동의를 구하는 상황을 넣자고 정작가님께 제안했습니다. 제한된 상황에서 덕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선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왕이 동의를 구하는 건 초현실적으로 보이겠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산과 덕임의 모습으로는 충분히 납득 가능할거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후반부에서 짧게나마 후궁의 삶이 덕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리면서 시청자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남자의 곁을 얻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덕임의 일상이 이전의 덕임의 행동에 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량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란 제목이 상징하듯 궁녀의 상황, 감정에 보다 중심을 뒀다. 중반에는 궁녀들의 비밀 조직 광한궁 같은 묵직한 소재도 녹여냈다. 시청자의 호불호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덕임과 이산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결속시킨 사건이었다.
정지인 감독은 "초반 기획 단계에서부터 있던 설정이었고 극 전개상 필요한 장면이라고 판단했다. 편성 전 대본 평가 회의 때는 가장 반응이 좋은 설정 중 하나였다"라고 밝혔다.
"원작에서 제조상궁의 역할은 감춰진 느낌이라 이를 전면으로 갖고 올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산에게 있어 영조가 최대의 정적이라면, 덕임의 입장에서 그런 사람은 제조상궁 조씨라고 생각합니다. 궁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사람. 조씨는 궁녀들을 위한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목표와 방향이 왜곡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남들을 올바르지 않은 길로 인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소한 선택이라도 동무들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의에 놓는 덕임과는 전혀 다릅니다.
박지영 배우님의 아우라가 조씨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더하며 덕임과 산에게 정적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광한궁의 수장 조씨는 불에 탄 곤룡포를 즈려 밟으며 왕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왕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궁녀 조직의 양면성을 함께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대장금'에서 궁녀가 문을 열어주고 수라상의 음식에 약을 타는 사소한 행동으로 중종반정이 이어지는 설정이 기억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궁녀들이 따로 사조직을 관할하여 결국 ‘택군’도 가능케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광한궁의 일원인 조씨의 조카 월혜는 실존인물인 강월혜가 정조의 암살 시도에 가담했다는 기록을 참고해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설정이라고 할지라도 드라마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무리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설정들이 더욱 많은 시청자들에게 납득이 가게끔 전개를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연출을 했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또한 로맨스가 줄어 아쉽다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합니다."
정지인 감독은 "5회 엔딩에서 시경을 낭독하던 중, 영조의 난입 이후 덕임이 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엔딩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떠올렸다.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감독의 깊은 고뇌가 엿보인다.
덕임은 5회에서 "저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는 그날까지 제가 저하를 지켜드리겠다. 저하께서는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으실 것이다. 일평생 전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오직 전하만을 위한 전하의 사람이다.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저하를 지켜드리겠다"라고 말해 이산의 마음을 울렸다.
"드라마 전개상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고, 산과 덕임,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동궁 처소 세트가 세워지자마자 두 사람의 위치를 어디에 놓을 지 고민했고,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에게 그림자를 이용한 투샷을 꼭 찍겠다고 했습니다. 그림자 때문에도 그렇고 초반의 세트 촬영이라 조명과 촬영 장비 세팅도 한참 걸렸습니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이준호, 이세영과의 에피소드도 언급했다.
"점심 먹고 리허설을 시작해서 밤 1시가 꼬박 넘어 촬영이 끝난 후에 세영 씨랑 준호 씨가 기운이 다 빠진 상태로 저한테 와서 셋이 부둥켜 안았습니다. 셋 다 완전 지쳐 있는 상태로 얼싸 안고 너무 고생했으니 빨리 퇴근하자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둘 다 저한테 만족스럽게 나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설레는 감정에서부터 분노와 당혹감, 그리고 충심과 연심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릴레이를 배우들 모두가 훌륭하게 소화한 덕분에 저에게는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드라마의 수많은 엔딩 중 초반에 찍은 만큼 더욱 애착이 갑니다."
정지인 감독은 "그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든 순간"이라며 여운에 젖었다.
"촬영 장소의 세팅과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모두 다 떠오릅니다. 함께 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인데 여전히 촬영 중인 꿈을 꾸는 걸 보면 한동안 잊는 게 힘들 것 같습니다."
사진= MBC 옷소매 붉은 끝동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