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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男싱글의 전설 정성일, "한국 피겨의 미래 충분히 밝다"

기사입력 2011.01.11 11:37 / 기사수정 2011.01.11 11:37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김연아가 등장한 이후, 국내 선수들의 마인드가 달라졌다고 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요. 제가 스케이트를 타던 시절보다 많이 발전했지만 좀 더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나아진다면 한국 피겨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고 전망합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20, 고려대)가 등장하기 전,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이는 정성일(42)이었다. 정성일은 1991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남자 싱글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국제대회 메달을 거머쥔 정성일은 91년과 92년 아시안컵 정상에 등극하면서 아시아 간판 스케이터로 성장했다.

미국 전지훈련지에서 한 달 만에 트리플 5종 점프 모두 완성해

한국 피겨 스케이터가 국제대회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때는 1968년 그레노빌 동계올림픽이었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존재를 알린 이는 이광영, 김혜경, 이현주 등이었다.

그로부터 23뒤인 1991년, 트리플 5종 점프는 물론, 트리플 악셀까지 구사했던 정성일은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91년과 92년, 아시안컵 정상에 등극한 정성일은 93년과 94년에도 이 대회에 출전해 2년 연속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988년 캘거리와 1992년 알베르빌, 그리고 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 남자 싱글을 대표하는 부동의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올림픽에도 3번이나 출전했다.

90년대 한국 피겨의 '간판'으로 활약한 정성일은 올림픽 3번 출전과 아시안컵 우승의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상했다. 95년 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빙판을 떠난 정성일은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희 아버지가 피겨 스케이팅을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피겨 스케이트를 선물해 주셨고 이를 계기로 선수의 길을 걷게됐습니다"

정성일이 스케이트를 시작한 70년대는 '피겨'란 종목이 여자 아이들만 하는 종목으로 여겨졌다. 남자가 스케이트를 신으면 당연히 스피드스케이팅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 피겨는 여자 아이들이 하는 종목이라는 주변의 시선이 매우 강했어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피겨에 큰 재미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LA로 전지훈련을 떠나면서 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덕수중시절까지 정성일은 트리플 점프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이었던 이수영 회장의 도움으로 미국 LA 전지훈련을 떠나게 됐다. 반포고 1학년이었던 정성일은 6개월간 진행된 미국 전지훈련에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스승인 프랭크 케롤을 만나게 된다.

"당시 이수영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님의 도움으로 미국 전지훈련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프랭크 케롤을 만났는데 그 분의 지도를 받고 트리플5종 점프를 한 달 만에 다 완성시켰어요. 예전에는 피겨에 대한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고1 때 처음으로 다녀온 전지훈련이 제 피겨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피겨의 전설' 미셸 콴(30)의 지도자로 유명한 프랭크 케롤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에반 라이사첵(25)을 지도했다. 또한, 현재는 미국 여자 싱글의 기대주 미라이 나가수(18)의 지도하고 있다. 기존에 지니고 있었던 탄탄한 체력도 완벽한 점프를 완성시키는데 큰 도움이 됐다.

"어렸을 때부터 지상훈련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함께 남산에서 체력 훈련을 강도 있게 했는데 이러한 점이 트리플 5종 점프를 완성하는데 뒷받침이 됐어요"

순식간에 트리플 5종 점퍼가 된 정성일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85년, 미국 LA에서 트리플 점프를 완성한 정성일은 그로부터 6년 뒤, 91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아시안컵에서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파워풀한 점프를 추구한 스케이터, 한국 피겨의 가능성을 제시하다

현역 시절, 정성일의 점프는 매우 정석적이고 힘이 넘쳤다. 회전수가 꽉 차고 파워풀한 점프를 구사했던 정성일은 각종 국제대회에 입상하며 한국 피겨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가 현역 선수로 뛸 때에는 그랑프리 시리즈가 없었습니다. 출전할 수 있는 대회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뿐이었죠. 91년도에 처음으로 아시안컵이란 대회가 생겼고 1,2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3,4회 대회 때는 은메달을 획득했었죠. NHK트로피 대회에도 출전했는데 아쉽게도 4위에만 2번 머물렀습니다"

정성일은 트리플 5종 점프는 물론, 트리플 악셀까지 구사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남자 싱글 선수들이 트리플 악셀을 뛰고 쿼드러플(4회전)까지 구사하는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트리플 악셀을 뛰는 선수들이 10명 안팎이었다.



"제가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이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이었는데 이 대회는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출전하고 있었어요. 브라이언 오서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죠. 저는 파워풀한 점프를 구사하던 보이타노를 더욱 좋아했습니다"

카타리나 비트(독일, 84년 사라예보, 88년 캘거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함께 80년대 최고의 피겨 선수로 각광받은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는 정성일의 롤 모델이었다. 남자 싱글의 진수인 파워풀한 경기력을 선호했던 그는 보이타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제가 활동했던 시절, 남자 싱글은 커트 브라우닝과 알렉세이우마노프 등이 주름잡고 있었죠. 제 실력을 지금 돌이켜보면 테크닉은 좋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보다 예술성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눈앞에 있는 기술에 연연하지 않고 기본기에 충실한 것이 중요

정성일은 95년도 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곧바로 지도자로 변신해 후진을 양성했고 200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디즈니 온 아이스' 단원으로 활약했다. 오디션을 본 뒤, 디즈니 온 아이스의 단원이 된 정성일은 알라딘 역을 소화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아이스 공연에 푹 빠져 살던 그는 최근 다시 지도자로 복귀했다. 2010년 여름, 휴가차 일시적으로 귀국한 정성일은 전 국가대표인 박빛나(26) 코치의 요청으로 지도자의 길을 다시 걷게 됐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올 때는 다시 코치생활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누리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던 박빛나 코치의 요청을 듣고 다시 선수들을 지도하기로 마음을 바꿨죠. 결국, 디즈니 아이스쇼 단원 활동을 접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정성일 코치는 전 국가대표인 윤예지(16)를 지도하고 있다. 한동안 부상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지만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2010 전국남녀종합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자신이 선수로 활동했던 시절보다 피겨를 지망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팬들의 관심도 높아진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열악한 환경은 아쉬운 점으로 다가왔다. 선수들이 시간에 구애를 받으며 어렵게 훈련하고 있는 상황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현재 국내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봅니다. 선수들의 몸 상태가 좋을 때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훈련하는 현실이 안타깝죠. 또한, 하루에 몇 번씩 아이스링크를 이곳저곳 옮겨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정 코치는 "북미에 있을 때, 그곳 링크는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피겨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이 부러웠다"고 밝혔다. 피겨 지망생들은 꾸준하게 늘어나지만 이들이 훈련할 수 있는 전용링크가 없는 점은 한국 피겨의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여자 선수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남자 선수들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여자 싱글뿐만이 아닌, 남자 싱글과 페어, 아이스댄싱 등이 모두 고르게 발전하는 것이 한국 피겨의 남겨진 과제다.

"남자 선수들은 같은 남자들과 훈련을 하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내 남자 싱글선수들은 경쟁 상대가 부족해 늘 고생을 해왔었죠. 피겨 지망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 남자 선수들도 점점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정성일 코치는 좋은 후배를 양성하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한 때, 한국 남자 피겨를 대표했던 정 코치는 "눈앞에 있는 기술보다 탄탄한 기본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북미 선수들이 스케이팅 스킬을 비롯한 기본기가 탄탄한 이유는 두 가지 스케이팅 섹션 수업을 철저하게 받기 때문이죠. 스케이팅 섹션은 파워 스케이팅 스킬과 스텝 에지 스킬로 나눠져 있는데 이 훈련을 별도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국내는 이런 훈련을 할 시간이 충분치 않죠. 이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동감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이러한 부분들이 개선되면 한국 피겨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정성일 (C) 정성일 제공,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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