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노크]는 영화계 안팎에서 힘을 보태고 있는 숨은 일꾼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엑스포츠뉴스의 고정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열네 번째 주인공은 김흥래 모션디렉터입니다. 김 감독은 '미스터 고'(2013), '신과 함께-인과 연'(2018), '창궐'(2018),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2: 새로운 낙원'(2018)과 OCN 드라마 '손 the guest'(2018) 등의 작품에서 고릴라와 공룡, 좀비까지 남다른 모션 연기를 선보이며 상상 속 크리처들을 현실 세계로 소환해냈습니다.
지난 달 개봉한 '해치지않아'(감독 손재곤)에서도 활약을 이어간 김 감독은 1월 22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미스터 주:사라진 VIP(이하 '미스터 주')'(감독 김태윤)에서도 애니멀 액팅 디렉터로 활약,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실감나는 볼거리를 선사했습니다.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국내 1호 모션디렉터'라 불리는 김 감독은 연기를 할 때 직접 사용했다는 동물 머리 모양 파란색 탈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3천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알차게 만들어진 이 탈은 김 감독이 활약한 많은 영화 속 동물 캐릭터 구현의 바탕이 됐다. 동물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남다른 김 감독은 "동물들의 눈을 제대로 빤히 바라보기만 해도 그 아이들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사진 촬영을 도와준 카페의 애견과도 금방 친밀해지는 모습으로 훈훈함을 자아냈다.
1983년생인 김 감독은 열다섯 살 때부터 지방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오랜 시간 속 자신의 모습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해왔다. '반지의 제왕' 속 골룸을 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의지를 다졌고, 그 개성을 살려 모션디렉터라는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힘 있게 얘기하다가도, 모션디렉터로의 삶을 털어놓으면서는 몇 차례 촉촉해진 눈시울로 쉽지만은 않은 이 분야에 대한 현실을 느끼게 했다.
▲ "韓 크리처물, 시작 단계…'미스터 주'같은 도전 많이 나와야"
-'미스터 주'에서 액팅 디렉터로 활약했어요.
"제가 저를 표현할 때 저를 낳아준 사람은 김용화 감독님('미스터 고'), 키워준 사람은 한상호 감독님('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2: 새로운 낙원'), 그리고 저를 제대로 활용해준 분은 김태윤 감독님이라고 말하곤 하는데요.(웃음) '점박이2'에서는 CG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도 활동했었죠. 이번 영화에서 김태윤 감독님은 제가 연기하는 장면에 대해 많은 부분을 맡겨주셨어요. 저는 동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모션디렉터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동물 CG 작업이 정말 적은 예산 안에서 이뤄졌는데, 감독님께 '동물의 얼굴이 안 나올 때도 말을 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드렸었거든요. 그럼 CG가 적어도 동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 좀 더 많아지니까요. 실제 영화에는 저희가 촬영했던 동물 분량의 4분의 1정도만 나왔어요. 하지만 CG도 한정된 예산 안에서 굉장히 잘 나온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CG로 채우지 못하는 풍성함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김 감독이 바라본 '미스터 주'는 어떤 영화인가요.
"'미스터 주'는 개를 싫어하던 사람이 개와 친해져서, 결국에는 그 개와 살게 된다는 이야기만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물의 말을 듣게 된 사람이 동물들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인간들보다 동물들로부터 더 적극적인 도움을 받게 되잖아요. 그런 감동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관객들이 좀 더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죠.
예를 들어 '닥터 두리틀'이 동물과 사람의 완벽한 호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미스터 주'는 전혀 남남이었던 사람과 동물이 부딪히다가 친해지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죠. 그 과정들을 통해 교감을 하다가 일순간 소통이 끊겨버리면 사람이 굉장히 외롭고 적적해지는데, 그 표현이 잘 된 것 같고요. 결국은 동물을 통해 인간 얘기를 한 것이라고 봐요. 제가 김태윤 감독님에 대한 애정이 넘치거든요.(웃음) 감독님의 작품들인 '또 하나의 약속'이나 '재심'을 보고 있으면 '뭔가 이 얘기를 꼭 사람들에게 알려야지'라는 부분을 떠나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어요'라는 것을 자세하게 들려주는 것 같아요. 감독님의 그런 마음속의 따뜻함이 참 좋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태주(이성민 분)와 알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시점이 생긴 그 순간이요. 알리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태주가 대신 총을 맞으러 뛰어들잖아요. 사실 눈물이 많이 났거든요.(웃음) 태주의 사랑의 대상이 개로 바뀐 것이잖아요. 또 (교감이 형성되기 전) 멧돼지가 태주에게 '나를 흑돼지 집에 팔아?'같은 말도 하는데, 단순하게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김태윤 감독님의 블랙코미디가 들어간 부분이잖아요. 한 번쯤 남에게 귀 기울일 수 있듯이, 그 아이들의 이야기도 한 번 들어줄 수 있게 되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었죠."
-동물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골룸 같은 연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킹콩'처럼, 언어가 없지만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는 그런 연기도요. 동물 연기를 많이 하다 보니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냐고 묻기도 하는데….(웃음) 그런 건 아니고요. 저도 리치와 마야라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데, 이번 '미스터 주'를 하면서 '저 동물들이 내게 말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할까?', '내가 우울해 한다면 '뭐 힘든 일 있어?'라고 물어볼까?', ''오늘은 수입이 좀 괜찮아졌어?'라고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단순하거든요. 우린 너무 복잡하게 여기지만 동물들은 쉽고 단순하게 생각해요. 인간들이 너무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것이죠. '미스터 주'에서 하는 동물들의 대사를 들어보면 정말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요.(웃음) 김태윤 감독님이 동물의 대사 속에 녹인 유머코드에서도 감독님이 노력하신 부분이 와 닿더라고요."
-이성민 씨에게는 남다른 고마운 마음이 있다고요.
"이성민 선배님이 저를 배우로 많이 봐주셨어요. 밥도 많이 사주셨고요.(웃음) 그리고 사실 뭐랄까요. 그렇게 유명한 배우들과 시간을 보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저는 언제나 별종이었기 때문에 저를 같은 배우로 그렇게 대해 주셨던 분이 없었어요. 이성민 선배님에게도 이 기회를 통해서 제 마음 속에 있는 감사함과 존경심을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 현장에서 선배님을 만날 수 있어 정말 반가웠지만 사실 함부로 얘기를 붙이기는 어려웠었고요. 그런데 선배님이 먼저 다가와 주셔서 '보고 싶었다, 인마' 이렇게 해주신 인사 한 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미스터 주'를 통해서 김태윤 감독님과 이성민 선배님을 알게 된 것은 앞으로 제가 살아가면서도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아요. 정말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자존감을 주신 분이거든요. 선배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때도 많아요.(웃음) 이성민 선배님과 또 생각나는 분, 김혜은 선배님이 많이 응원해주셨죠. 김응수 선배님께도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크고, '해치지않아'의 손재곤 감독님도 마찬가지고요."
-모션 연기를 하며 느끼는 고충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에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가 매우 높잖아요. 할리우드에서는 모션 연기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체계가 잘 마련돼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그 인프라가 부족하거든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계속 만들고 도전해봐야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죠스'같은, 할리우드의 25년에서 30년 전의 가장 좋았던 아이템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하고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저예산으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활로를 찾아보면 좋겠다 싶죠.
이렇게 크리처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자꾸 외면 받으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의 노하우들도 활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잖아요. 저 역시도 동물 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런 도전적인 VFX(Visual Effects, 시각특수효과) 영화들이 안 되면 속상한 마음이 크거든요.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더 활로를 찾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국영화의 자본이 할리우드나 중국만큼은 안 되겠지만, 100억대의 규모에서 100억 이하의 자본으로 이 정도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응원은 좀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많은 작품들에 참여하며 현실적인 부분들을 느낀 감정들이 큰 것 같네요.
"저는 '물괴'를 열두 번 정도 보고, '대호'도 다섯 번 넘게 봤거든요. 이 얘기를 드리는 이유가, 크리처가 등장하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 분명히 잘 한 부분과 잘못한 부분들이 보일 것이에요. CG 캐릭터를 활용해서 만드는 영화들이, 저희는 이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30년 전 할리우드 영화들이 도전했던 장르를 이제 시작하는데,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대중의 응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싶죠. 대한민국에서도 저 같은 이상한 돌연변이가 나왔잖아요?(웃음) 그런데 이 돌연변이가 숨을 쉬고 살 수가 없어요.
제가 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이런 장르의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마니아 층이 계속 관심을 가져주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장르를 만들 때 가족영화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으면 만들 수가 없는 것이 현실 같아요. 어쨌든 많은 사람이 보게 해야 하니까요. 혹자는 '너희들이 제대로 만들면 우리도 볼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정말 잘 만들고 싶어서 노력하는 그 마음도 조금은 너그럽게 들여다봐주셨으면 하는 것이죠."
-CG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반지의 제왕'같은 영화도, 한 번에 나오지 않았잖아요. 80년이란 시간의 노하우가 필요했죠. '매트릭스'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 하루아침에 어떤 천재가 나와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배우 인프라는 정말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성민 선배님도 그렇고, 성동일 선배님이나 김명민 선배님처럼 보이지 않는 대상들을 보고 훌륭하게 연기할 수 있는 좋은 배우들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그리고 그 캐릭터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뭔가 더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저는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나 '점박이' 모두 주어진 예산 안에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지금처럼 SF, 크리처, 판타지를 소화해낼 수 있는 제작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죠. 개인적으로는 '해치지않아'와 '미스터 주'가 극장에 걸려 있는 동안, 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비판만 하기보다는, 오히려 보고 나면 여러 장점이 있는 영화들이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만 가져주신다면 더 좋은 영화들이 보답할 것이라 믿고요. 영화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관 확보가 어려워서 보지 못하는 영화들도 많은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속상한 마음이 있어요. 이제는, 이런 영화가 클 수 있게 많이 도와주셔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 "능력 활용할 곳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다양한 기회 열렸으면"
-지난 주 방송된 OCN 드라마 '본대로 말하라'에서는 연쇄살인마 강승환 역할로 출연했죠. 배우 김흥래 그대로의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어요.
"'손 the guest'를 연출했던 김홍선 감독님이 불러주셨죠. 오디션에 참여했고, 감독님께서 잘 봐주셨어요. 캐릭터를 혼자 연기하는 것보다, 다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연쇄살인마 역이라 좀 크게 보여야 한다고 해서 살을 찌웠고, 이제 다시 빼야 해요.(웃음) 온전한 김흥래로 연기하는 순간들도 많이 꿈꾸죠. 제가 (모션 캡처 전문배우로 활동했던) (이)준혁 형님을 존경하는데, 지금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형님이 갖고 있던 연기적 에너지가 있었어요. 재작년부터 형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됐거든요. 시간이 지나 연기의 내면을 더 알아 가시면서 배우로 잘 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연출 쪽으로도 꿈을 갖고 있다고 들었어요.
"연출은, 김태윤 감독님과 같이 작업한 '로큰롤 익스프레스' 작업을 곡 하고 있고요. 평소에도 글을 꾸준히 쓰고 있어서, 시나리오를 여러 군데에 돌리고 있죠.(웃음) 사실 제가 모션 연기를 시작했던 이유가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부분도 있거든요. 뭔가 멋진 것을 연기하는 것보다는 소외된 사람들,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고 골룸을 보고 난 후 '난 저런 연기를 해야겠구나' 싶었었어요. '내가 잘 하는 것을 해야지'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게 CG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죠. 현장에서 공간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저 같은 모션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부분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없고, 사실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설사 저를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일이 없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자신이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탓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요.
"저는 이 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니까,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또 한 번 무너져도 그렇게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 그렇거든요. '미스터 고'(미스터 고 역) 때 1년을 준비했는데, 그 때 사실 많이 혼났기도 했었어요. 그 때 김용화 감독님이 해주셨던 얘기들이 많은데, 제가 영화의 첫 걸음을 걸을 당시 제게 가장 큰 양분이 된 존재가 김용화 감독님이었던 것이죠. '미스터 고' 때의 저는 NG 없이 연기를 끝내야 하는 배우였어요. 그 현장에서 그렇게 배우고 다음 작품들로 가면 제가 좀 더 발전해있다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렇게 크는 것이죠. 제가 그랬듯이, 지금 한국의 CG 영화들도 너무 혼나기만 하는 부분들이 많으니까 좀 다독여주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드는 것이고요."
-일을 대하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크리처 영화가 나오면 일부러라도 계속 봐주거든요.(웃음) 그리고 저의 상황은…. 취업준비생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일 계약이 될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죠. 아마 모든 프리랜서가 그렇지 않을까요? 재능 있는 친구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으려면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더 많이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것은, 진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느 정도의 각오는 하고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는 지망생들이나 무명 배우들도, 정말 이런 연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그동안 지켜봐오면서 느낀 것이, 정말 저 같은 마음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죠. 세상에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정말 없어요.(웃음)"
-영화에서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같이 애썼던 분들을 언급하고 싶을 것 같은데요.
"'해치지않아'에서 사자 연기를 했던 조한준, 나무늘보 연기를 했던 김태희, 그 다음에 중간 대역을 해줬던 이형원, 윤상돈 이 친구들에게 고생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미스터 주'에서도 조한준, 나미소, 임상일, 윤상돈 이 친구들이 수고해줬거든요. 자꾸 이렇게 흔적도 남지 않는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그 말이 하고 싶네요. '그리고 너희들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도 말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고마운 분들을 말하면서 뭉클해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그래도 저는 이렇게 제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잖아요. 저를 특이한 사람으로 보게 하기보다는, 평생을 바친 전문가로 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같이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았고, 더 일을 많이 하게 해줬어야 하는데 이런 종류의 영화가 2~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죠. (먹고 살 수는 있지만) 일이 없을 때는 저도 실제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입을 충당하고 있고요."
-연출 도전의 계획과 배우 활동까지, 앞으로도 이 쪽 분야의 일을 꾸준히 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크게 느껴져요.
"지금까지 맨 땅에 헤딩하면서 살아왔거든요.(웃음) 영화 일을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항상 남이 만들어 온 일에 들어가려고 노력을 했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이유도, 영화화가 안 될 수도 있지만 또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니까 일을 정말 하고 싶은 마음에서 계속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요. 중간에 다른 일들을 하면서, 버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일을 넘치게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비는 시간은 항상 공부를 했죠.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크리처물 같은 이야기를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다루는 법은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영화들만 평생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한국형 크리처물에 대한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 있는 중이에요.
언젠가 입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크리처를 통해서 인간의 단면을 많이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죠. 계속 노력할 것이고요. 평생을 시험 보는 것 같네요.(웃음)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을 아직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흑염소라고 하면, 제가 흑염소 연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북극곰이나 고릴라 연기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정말 영화에서 잘 쓰일 만큼 만들고 익혀가야 되는데, 항상 제가 제일 잘해서 제게 일이 들어온 적은 없다는 것이죠. '이런 게 있는데 할 수 있겠어?'라는 형식인데, 그래서 항상 시험을 보는 기분으로 사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에요."
-지금까지 잘 버텨온 자신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바라는 점들을 얘기해 본다면요.
"저 스스로를 돌아보면, 진짜 상을 주고 싶을 만큼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10년 동안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며 버티긴 했거든요. 영화로는 '미스터 고'를 2년 7개월 했고, '점박이2'를 2년 1개월 했죠. '미스터 주'도 2년, '해치지않아'까지 포함하면 대부분 한 작품에 2~3년을 썼다고 보면 돼요. 그래도 제가 여태까지 이만큼 일할 수 있던 것은 제가 그런 여러 시험 관문이 닥쳤을 때 노력해서 잡은 결과들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작품의 성적이 사실 좋은 결과가 별로 없다 보니까, 앞으로도 내가 다른 작품에서 부름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는 당연히 있지만, 가끔씩 자꾸 자갈밭에 농사를 지으려고 곡괭이질을 하고 그 밭에서는 파도파도 돌만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현장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물론 있죠. 일종의 색안경인데, 그럴 수는 있다고 보거든요. 좀비 연기를 하거나, 그 외에 얼굴이 안 나오는 연기를 하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저는 이게 다 생소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하게 소재를 넓힐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많을 것이거든요. 그런 영화들이 계속 있다면 저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그리고 제가 정말 성실하거든요.(웃음) 정말 한 우물을 파면서 CG는 물론이고, 다양한 공부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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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