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덕행 기자] 작곡가 이호섭이 자신의 인생을 공개했다.
14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는 작곡가 이호섭이 출연했다.
'사랑의 불시착' '안녕 그대여' '짝사랑' '다함께 차차차' '찬찬찬' '뭐야 뭐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매한 이호섭이지만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호섭은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편지로 국내 굴지의 레코드사, 기획사에 작품을 보냈다. 그런데 안되더라"라며 "이런 와중에 집사람을 만났다. 아내가 '작곡가가 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며 자기가 벌었던 돈을 모아 서울로 올라왔다"고 전했다.
이어 "4~5년 만에 돈이 바닥이 났다. 먹고 사는게 급해서 무작정 스탠드바로 향했다. 거기서 사회를 하며 돈을 벌었고 이후 문희옥을 만나 사투리로 디스코를 내며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날 이호섭은 30년 지기 설운도와 만남을 가졌다. 설운도는 "동네가 가까워서 자주 왕래했다"고 오랜 우정을 설명했다.
이호섭은 자신이 작곡한 '다함께 차차차'에 대해 이야기하며 "작사가에서 작곡가로 돌아선 터닝 포인트였다"며 "내 인생에서 설운도라는 스타가 없었으면 내 인생은 꽃을 피울 수 없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설운도 역시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가 참 귀한 사람들이 만나서 가요계에 한 획을 긋고 있으니까 좋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이어 이호섭은 본인의 집을 최초로 공개했다.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집은 깔끔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자랑했다.
특히 이호섭은 작업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작곡 공책을 소개했다. 이호섭은 "" 공책당 70~80곡 정도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총 26권의 작곡 공책에 약 2000곡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이호섭은 "이 곡들이 아직 출생 신고가 안 됐다"며 엄청난 작업량을 자랑했다.
또한 이호섭은 첫째 아들 이채운과 고향 어머니집을 찾았다. 이호섭은 "어머니께서 어렵게 일궈놓은 게 바로 이 집이고 이 집에서 아들이 작곡가가 되고 방송인이 되는 역사가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 손태임은 "내가 우리 집이 좋아서 아파트 사준다 그래도 안갔다. 집터가 좋아서 아들이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저리 잘 됐는데 왜 저런 집에 사나?'라고 그러는데 내가 평생 여기서 살아야 (우리 아들한테)더 좋을 것 같아서 이곳에 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이호섭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도 공개했다. 이호섭은 "어머니가 20대 중반의 나이에 혼자가 되셨다. 집안에서 재가를 하라고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하며 '도련님이 장가가서 아이를 하나 보내달라'고 하셨다"고 자신이 입양됐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세 살때 데려와서 내가 키웠다"고 말했고 이호섭 역시 "제가 59년에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50년에 돌아가셨다. 작은집 형제들이 저와 판박이라 작은 집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어머니가 진짜로 '너는 작은집에서 태어났다'고 말한 적은 없다. 상처받을까봐 말씀을 안하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이호섭은 현재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중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호섭은 "빚에 몰렸을 때 학업을 중단했다가, 나중에 검정고시로 합격해서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했다. 대학교도 독학으로 졸업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호섭은 "정말 다니고 싶은 것이 학교였다. 그 한이 뿌리내려 있었는데, 대학원 진학한 순간부터 완전히 동심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는 곧 성적으로도 이어졌다. 이호섭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석사부터 박사까지 성적 장학생으로 다녔다. 모범이 돼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했던 것이 운이 좋게 됐다"며 수줍게 성적을 자랑했다.
이밖에도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호섭은 "대중가요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 바탕을 만들어 보는 것. 이것이 제 마이웨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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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행 기자 dh.le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