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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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노크] 배세영 시나리오 작가 "24시간, 늘 재미있는 것을 찾고 있어요"

기사입력 2018.12.03 08:00 / 기사수정 2019.02.10 15:07


[김유진의 노크]는 영화계 안팎에서 힘을 보태고 있는 숨은 일꾼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엑스포츠뉴스의 고정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열한 번째 주인공은 시나리오 작가 배세영입니다. 배세영 작가는 지난 10월 31일 개봉해 12월 2일까지 513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습니다. 현실감 넘치는 대사와 상황들로 탄탄한 스토리를 완성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영화의 뼈대를 만들어 낸 '완벽한 타인'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그야말로 극장가에 신선함을 안겼던 시간이었다. 전 국민의 98% 이상이 갖고 있다는 핸드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소재로 '완벽한 타인'은 웃음, 공감, 긴장을 모두 담아내며 500만 관객이 넘는 흥행을 일궈냈다.

그 중심에는 배세영 작가가 있다.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2007), '킹콩을 들다'(2009), '적과의 동침'(2011), '미나문방구'(2012), '우리는 형제입니다'(2014), '바람바람바람'(2017)의 각본과 '된장'(2010), '미쓰GO'(2012), '원더풀 고스트'(2018) 등의 각색을 맡으며 꾸준히 활동해왔다. 여기에 예능 'SNL 코리아'의 작가와 최근 종영한 tvN 금요드라마 '빅 포레스트'의 각색 등 방송계에서의 잔뼈 굵은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연기하시는 분들을 보고 감동받은 첫 작품"이라며 영화 개봉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전하던 배세영 작가에게 '완벽한 타인'과 영화, 또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완벽한 타인'의 시작이야말로 작가님이 만드신 것이 아닌가요.(웃음)

"영화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쓴 대사이지만, 쓰면서도 제가 '이 대사는 이런 톤으로 하게 되겠지', '이런 톤으로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영화에서 전혀 그 톤이 아닌 대사가 나오는데, 너무나 잘 어울리고 맞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연기를 어쩌면 이렇게 정말 잘 하시는지,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연기하시는 분들을 보고 감동받은 첫 작품이에요.(웃음)"

-영화의 완성본은 시사회 때 처음 보셨다고 들었어요.

"VIP 시사회 때 처음 봤어요. 일부러 안보고 기다리다가 딱 그날 가서 봤죠. 이전에도 기술 시사회 때 가서 본 적이 있었는데 스태프 입장에서 보는 느낌이라서, 그보다는 관객의 마음으로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 VIP 시사회 때 가족들과 가서 봤었죠."

-'완벽한 타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것인가요.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께서 저의 다른 시나리오를 보시고, 제안을 주셔서 함께 하게 됐죠. 그래서 원작 영화('퍼펙트 스트레인저'(2016, 이탈리아))를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사실 '무슨 내용이지?' 싶었죠. 잠시 고민하고, 한 번 다시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보게 됐어요. 그랬는데, 두 번째 볼 때는 제가 처음에 뭘 봤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감동을 많이 받은 것이에요. 그게 엔딩 때문이었거든요. 첫 번째로 봤을 때는 엔딩을 못 봤었어요. '왜 저러다 웃으며 헤어지지? 외국은 저렇게 마음이 열려 있나? 이상하다' 싶었던 엔딩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소름이 끼치는 거예요.(웃음) 그러면서 정말 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죠."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과 속초로 기획 회의를 떠나기도 했었죠.

"그 때만 해도 감독님, 대표님, 저 모두 안 친했어요.(웃음) 그런 조합이 1박 2일로 놀러간 것이죠. 안 친한데 서로 친한 척 하면서 정말 어색하게 가는 것 있잖아요.(웃음) 가서 물곰탕을 먹으면서 생각했죠. 집들이 장면을 만들 때 바비큐나 샐러드, 이런 음식보다 물곰탕을 꼭 넣어야겠다 생각했고, '글로 깜짝 놀라게 해 주겠다' 마음먹었어요. 속초 음식을 같이 먹는 장면이 나오면 이들이 끈끈한 친구들이라는 설정이 잘 드러날 것이라는 마음이었죠.

프롤로그에서 아역들이 나오는 장면 중에 영랑호에서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난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속초 영랑호가 이 영화를 완전히 대변해주는 소재라고 생각했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바닷물 같은 모습도 있고 민물 같은 모습도 있구나, 그런 게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영랑호에서 아이들이 '여기가 바다냐, 민물이냐' 싸우는 모습부터 시작을 하게 된 것이에요."

-각본을 쓰면서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신경을 쓰기도 했었고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이었어요. 제가 영화를 볼 때도 그랬지만, 제게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말하라고 하면 저는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에는 모두가 각자의 사연들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니, 캐릭터 설정을 할 때 정말 겹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죠. 어떤 대사는 오히려 '캐릭터들이 어쩜 저렇게 작위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일까' 할 수도 있는데, 그래야지 많은 군상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남자 배우들 캐릭터를 짤 때는 혈액형을 가지고 만들었어요. 석호(조진웅 분)는 A형, 태수(유해진)는 B형, 준모(이서진)는 O형, 영배(윤경호)는 AB형 그렇게 놓고 시작했죠.여자 캐릭터들은 세경(송하윤)이가 O형이라는 것만 놓고, 수현(염정아)이나 예진(김지수)에게는 모든 여자들이 갖고 있는 성격들이 조금씩은 다 들어있는, 그런 틀을 놓고 만들었어요."

-이 장면만큼은 꼭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부분도 있나요.

"원작 영화에서는 여자들에게 무언가 그렇게 큰 비밀들이 있지는 않아요. '완벽한 타인'을 만들면서는, 수현이 문학반 친구 김소월(라미란)에게 전화를 받는, "집들이 왔다"고 말하는 그 장면은 제가 꼭 넣어야 한다고 했죠.(웃음) 아마 여자들은 전화가 오면 이런 게 제일 무섭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친구들 4명이 있다고 하면, 계속 웃다가도 한 명이 화장실 가고 그러면 '근데 쟤는~' 이러면서 말하는 그런 것 있잖아요. 앞에선 '언니가 최고야' 이러지만 뒤에서는 질투하는 것이요.(웃음)

원작에 있지도 않았고, 제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게 여자들의 비밀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넣은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같이 공감해줄까?' 이런 기대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대사가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좋은 어휘를 써서가 아니라 아마 그 대사가 평상시에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 씩은 생각해봤을 말들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느껴주시는 것 같고요. 저 역시도 전체적으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멋진 것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보고 또 평상시에 많이 했던 대사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했어요."

-태수와 영배가 나눴던 일명 '키티' 언급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계속 회자되고 있죠.(웃음)

"키티라는 대사까지는 제가 썼는데, 갑자기 거기서 '57세' 얘기가 나올 줄은 저도 몰랐어요.(웃음) 결국 이 작품은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잖아요. 1순위, 무조건 제일 중요한 것은 대사였거든요. 그런데 그 대사에 감칠맛이 없고 늘어지거나 한다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대사 한 줄 한 줄을 쓰고 또 그 다음 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더 재밌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엄청나게 연구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연기로 힘을 더해준 것이죠."

-'완벽한 타인'의 시나리오를 마치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옆에서 지켜보셨던 건가요.

"저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업이 너무나 좋지만, 가장 슬플 때는 원고를 넘겨주고 '그동안 수고했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인 것 같아요. 사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잖아요. 시나리오가 제 손을 떠나는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어요. 멀리서 그저 그 아이가 잘 자라는지를 지켜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완벽한 타인'의 경우는 너무나 달랐어요. 감독님은 대사 한 줄, 혹시 다른 무언가 고칠 것이 있으시다면 제게 연락을 주셔서 상의하시더라고요. 제가 '감독님, 그냥 고치세요'라고 해도 '작가님이 쓰신 것이잖아요. 이렇게 해도 될까요'라며 물어봐주시고요. 정말 작가가 작가로 자부심을 갖게 만들어주신 감독님과 대표님이셨어요. 제작보고회처럼 무슨 행사가 하나 있다고 하면 무조건 연락을 주시고요. 정말 감동이었죠. '진짜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싶었고요. 정말 엄청난 은혜를 입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네요.(웃음)

"과정이 정말 원활했어요.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촬영 중일 때 응원하러 가기도 했고요. 항상 영화 촬영 할 때는 한 번 씩은 가서 현장도 보고 오고, 그러기는 하거든요. 정말 저희가 트러블이라는 것은 조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 찍자고 서로 약속한 후에, 저도 시나리오를 한 달 만에 썼는데, 정말 재밌게 썼어요. 쓰면서도 제가 아직 안 쓴 뒷부분이 궁금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썼죠.(웃음) 감독님과 대표님이 저를 정말 믿어주셨어요.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시니 저도 힘이 솟아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요. 진짜 즐거웠던 작업이었어요."


-올해 '바람바람바람'부터 '완벽한 타인'까지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이 꾸준히 개봉했죠. 꾸준히 작품을 쓸 수 있는 원동력,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도 궁금해요.

"올해 유독 많았던 것 같아요. 2014년에 제가 둘째를 낳고 2017년까지 3년 동안 11개 정도의 작품을 썼어요. 그 작품들이 요즘에 하나씩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고요. 제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대부분 오리지널 시나리오 각본을 썼었거든요. 그런 것들은 소재를 보시면 알겠지만, 제 주변에 있는 캐릭터들과 신문 같은 곳에서 본 내용들이 담겨 있어요. 일상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었죠. 제 장기가 휴먼코미디이기도 하고요.

제가 어렸을 때 작가의 꿈을 꾸면서 '나중에 작가가 되면 꼭 써봐야지' 했던 그런 내용들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적과의 동침'은 외할머니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고,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무당과 목사 이야기도 저희 엄마의 외삼촌 두 분 중 한 분이 목사, 한 분이 무당이신데, 잔치 때만 되면 만나서 티격태격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꼭 써야지' 했던 것이 '우리는 형제입니다'였던 것이죠."

-'SNL 코리아' 작가로도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어요. '여의도 텔레토비'가 작가님의 대표적 코너이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예능드라마 '빅 포레스트'에도 참여하셨죠.

"제가 워낙 콩트 같은 재미있는 것과, 정치 풍자를 좋아해요. 아주 우연히 TV를 보다가 각 정당별 뉴스가 나오는데 그 정당 로고가 색색깔로 바뀌는 모습에서 텔레토비를 떠올린 것이죠. 제가 'SNL 코리아'에서도 많은 콩트를 썼지만 혼자 맡아서 고정으로 했던 코너는 '여의도 텔레토비'였거든요. 기획부터 제가 했으니 코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조르고 졸라서 한 번만 틀어달라고 했는데 그야말로 '빵' 터진 것이에요. 정말 신나게 정치 풍자했었고, 그 시절이 제게는 진짜 너무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죠. '빅 포레스트'도 'SNL 코리아'를 함께 했던 지금의 CP님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저를 떠올려주셔서 함께 하게 됐고요. 드라마이지만, 사랑 내용 이런 것이 아니라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시사, 풍자 이런 것들이 다 들어있는 것이라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이야기 복'은 안고 태어난 느낌이네요.(웃음)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어릴 때부터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크면 노벨문학상 받을 거야' 이게 그 때만 해도 제 꿈이었으니까요. 중학생 때도 소설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이런 것들 정말 좋아했고요. 오죽하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요, 저희가 그림일기를 써가잖아요. 일기를 읽고 나면 선생님이 밑에 글도 많이 써주시고 하는데, 제 일기에는 그 글을 짧게 써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일기를 잘 못 써서 그런가?' 싶어 다시 보니까 너무 일상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그 어린 마음에도 드는 거죠. 그래서 선생님에게 주목받을 만한 일기를 써야겠다 싶었고, 그 다음부터는 거짓말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어떤 거짓말 일기를 쓰게 된 것이신가요.(웃음)

"'아빠가 오늘도 엄마를 때렸다' 이런 식으로요. 드라마를 본 거예요. 그게 너무 자극적으로 보이니까, '아빠가 돈을 가져오라며 엄마를 때렸다. 아빠는 돈을 들고 도박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쓰게 됐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네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전혀 알지 못 했구나' 이러시면서 엄청 길게 글을 써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더 심한 드라마가 된 것이죠. 엄마가 갑자기 집을 나가고, 엄마를 찾아 동네 사람들이 나서고 완전 대하드라마가 된 것이에요.(웃음) 선생님이 제 일기를 읽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사시다가, 결국 부모님을 부르셨어요. 이런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아이가 자랄 수 있냐고요. 저희 어머니요? 제 일기 보시고 당연히 깜짝 놀라셨죠. 저 그날 밤새 맞았다니까요.(웃음)"

-이 이야기가 정말 드라마 같네요.(웃음)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는 이유로 시작했던 것인데, 여기에 계속 이야기가 덧붙여지게 되고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이어지다보니까, 그 때 제 글 실력이 굉장히 늘어났던 것 같아요.(웃음) 그 때 만약 선생님께서 저를 혼내시면서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이러셨다면, 저는 글을 계속 못 썼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넌 문예반에 들어가야 돼' 하면서 저를 문예반에 넣어주셨어요. 거기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글을 쓰게 되면서 제가 글 쓰는 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시나리오 작가 입봉 계기를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그 기회가 어떤 것이었나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저는 문예창작과, 국문과에서 공부를 했으면서도 시나리오라는 과목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죠. 그런 상태에서 노래 가사도 써보고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학교 때 선배 한 분이 영화사에 있는 누구를 아신다면서 '시나리오 한 번 써볼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쓰는 것이냐고 물으니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간을 나눠서 쓰면 된다' 하시더라고요. 나이차이가 얼마 안 나는 엄마와 딸 이야기면 된다면서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생각해보니, 그 당시 제가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주효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가르치고 있었거든요. 만약에 얘기 속의 엄마와 딸이 현실로 오고, 사랑방 손님 같은 멋진 사람이 아니라 사기꾼 같은 사람이 온다면 얘기가 재미있고 색다르겠다 싶었어요. 그 이후부터 딱 16일 만에 시나리오를 썼죠. 그런데 그게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영화가 된 것이에요. '어? 영화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쉬운 것인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입봉을 한 것이죠. 그 다음부터 쓴 작품들이 다 영화가 됐어요. 처음에는 신기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이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조금씩 더 정제하면서 글을 쓰게 됐고요."

-옛 어른들이 '글로는 밥벌이하기 힘들다'는 말도 하곤 했었죠.(웃음) 현실적인 수입 문제는 어떤지도 얘기해줄 수 있나요.

"연예인과 비슷하다고 하면 될까요.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그렇지만, 아주 잘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받는 출연료의 확실한 차이가 있잖아요. 작가도 글을 정말 잘 쓰고 잘 나가면 경제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입을 얻을 수 있죠. 그야말로 능력제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아이템인 것 같고요. 글 솜씨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자신만의 아이템, 아직 발굴되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죠."

-시나리오 작가를 업으로 삼겠다고 하면 수입적인 면에서의 불안정함과 불규칙함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필요하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요즘은 작가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도 늘어나고 있잖아요. 저는 꿈만 꾸고 본인이 열심히 하면, 일자리가 없어서 안 되는 그런 것은 없을 것이라고 봐요."

-실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부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가는 사실 누구나 될 수 있잖아요. 제가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하지만, '여러분의 아버님도, 할아버님도 될 수 있다. '아이템'만 갖고 있다면'이라고 말하곤 해요. 시나리오 작가가 따로 자격증 같은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전공 역시 크게 상관없죠. 누구나 아이템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될 수 있어요. 공모전 도전, 제작사를 찾아가보는 것, 주위에 아는 인맥 활용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인맥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영화 쪽과 관련된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어떻게든 주변을 둘러보면 있을 것이에요. 자기 글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공모전이 가장 정확한 루트이긴 하죠. 하지만 또 공모전을 통해 당선됐다고 바로 영화가 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고요. 시나리오 작가 협회나 아카데미 같은 것도 있으니, 이곳에 다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요."

-작가님이 갖고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원칙과 소신이 있을까요.

"저는 어느 곳에 가서도 제 직업을 소개할 때 '시나리오 작가'라고 말하거든요. 원칙과 소신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울 수 있지만, 저는 제가 재미있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글 쓰는 작업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고 보죠. 제가 즐겁게 써야 결국엔 결과물도 좋고, 시청자도 즐겁고 그렇더라고요. 이번 '완벽한 타인'처럼요.(웃음) 그래서 어떤 소재를 누군가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멋질 것 같지만 제가 즐겁게 쓰지 못할 것 같으면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차기작 준비 상황은 어떠신가요.

"2019년에 개봉할 '극한직업' 시나리오를 썼고요. 여전히 두 작품 정도가 밀려있어요.(웃음) 또 요즘 들어 드라마 제의를 많이 주시더라고요. 그동안 육아 문제도 있고 해서 시간을 많이 비울 수가 없어 드라마는 거절을 했었는데, 이제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빅 포레스트' 하면서도 하게 된 것 같아요."


* 배세영 시나리오 작가의 잇(IT) 포인트

징크스를 묻는 말에 배세영 작가는 "정말 많은데…"라며 웃음 지었다.

"저는 작품을 새로 딱 시작할 때 그 전에 잘됐던 작품, 한 번에 OK를 받았던 작품의 파일에 들어가서, 그 페이지에서 다시 새 페이지를 열어요. 그럼 뭔가 좋은 기가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는 일할 때는 정말 깨끗해야 해서, 작업할 때는 호텔 같은 곳을 잡아서 집중적으로 작업을 마치는 편이에요.

가족들에게는 좀 미안하기도 한데, 저는 정말 일 중독인 것 같아요. 현실적인 육아 문제는 친정어머니가 정말 많이 도와주시고 있어요. 정말 집중해서 끝내야 되는 부분이 생기면 일주일 정도 양해를 구하고 집을 비우죠. 그 때 이미 제 머릿속에는 쓸 내용들이 꽉 차 있어요. 이동하려고 차에 시동을 딱 거는 순간,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죠.

저는 다른 취미도 없거든요. 그래서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글을 쓸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또 제일 많이 풀리기도 하고요. 항상 24시간 계속 글 생각을 하고 있고, 순간 떠오르는 것들은 메모를 해놓기도 하고 녹음기를 틀어서 녹음해두기도 해요. 항상 재미난 것들을 찾고 있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 얘기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많이 물어보고 찾는 일들을 하고 있죠."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박지영 기자,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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